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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미니어처 제작의 선구자, 기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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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축소해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를 만드는 작은 거인 기흥성! 올해로 어느덧 모형제작 인생 46년을 맞는 그는 이 분야에서는 대가로 손꼽히는 존재입니다. 현재는 아버지와 후학들을 위해 자신의 작품 인생을 총망라하는 박물관을 세우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직접 현장 시찰을 가고 도면을 그려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 등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위풍당당한 현역생활을 계속 해오고 있는 미니어처 제작의 선구자, 기흥성을 만나봅니다.


EBS <직업의 세계-일인자>

미니어처 제작의 선구자, 기흥성

 

2012년 5월 1일(화)
밤 10시 40분

미니어처 제작의 선구자, 기흥성

■ 모형제작의 대가, 기흥성!

모형제작 인생 46년 기흥성!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에는 뛰어난 소질을 보였던 그는 우리나라에선 모형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서있지 않았던 1960년대에 모형 제작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회사 건축부에서 일하던 그는 자신의 스승 故김수근 선생님의 뜻에 따라 회사 내부에 모형 팀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모형제작 일을 시작했고, 그 이후 꾸준한 작업 활동을 이어오며 분야 내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며 46년 동안 꾸준히 미니어처 제작이라는 외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 눈에 보다!

모형 제작의 일인자 기흥성! 그의 모형을 보면 우리나라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여의도 개발, 경부고속도로, 독립기념관, 88올림픽 주경기장, 상암 월드컵 경기장, 영종도 신공항 등 60~70년대의 개발연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허물어지거나 다시 지어진 건물들의 원형 모습 또한 그의 모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제하에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건축물로서는 뛰어났던 중앙청의 모형을 비롯해 소실되기 전의 숭례문, 서울역, 서울대학병원 등 많은 건축물들이 그의 손에 의해서 역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 손끝으로 또 다른 미래를 만들다!

기흥성은 요즘 박물관을 짓는 문제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사셨던 아버지와, 자신의 길을 뒤따라오는 후배들을 위해 박물관을 지어 자신의 46년 작품세계를 총망라할 계획에 있습니다. 4번의 심장 수술을 버텨내며 걸어온 길. 그는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위풍당당한 현역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 오늘도 그의 손끝에서 또 다른 대한민국의 미래가 만들어집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형의 세계! 미니어처 제작의 선구자 기흥성을 만나보시죠.






= 평양을 서울에 옮겨온 사나이

지난달 남북정상 회담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파격적인 언행 못지 않게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대목이 있었다. 평양시내의 주요 건물들과 자연경관이 대형 입체 조형물(가로 5X세로5m)을 통해 각 가정에 생생하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서울방송(SBS)이 내보냈던 평양 시내의 입체 조형은 김대중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처음 도착했던 순안공항에서부터 만수대의사당 인민문화궁전 능라도5·1경기장 고려호텔 등까지 평양시내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한폭의 그림으로 재현시켰다.

작품을 제작한 기흥성(寄興聲·62) 교수. 한국모형작가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그는 방송국의 요청을 받고 한달 동안 하루 3∼4시간 밖에안 자는 강행군으로 대작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자신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난 실향민이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동안 눈물이 앞을 가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남북 통일의 그날을 대비해 2년전부터 평양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수집해 왔습니다. 사진자료만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은 평양시내에 거주했던 귀순자들을 만나 변화한 모습들을 디자인 했습니다."

40년 가까이 조형제작에 몸담았던 기 교수는 사실 북한 조형물 제작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3년 대전 엑스포에 출품하기 위해 크기10mx20m의 초대형 백두산 천지 모형을 제작했던 것. 당시 천지에 들어갈 물을 백두산에 직접 가서 담아와 공수하는 `함수식'을 개최해 박람회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바 있다.

기 교수가 일생을 바쳐 제작한 작품들은 모두 3000여점에 달한다. 대표적인 작품은 롯데월드 민속관, 포항제철소, 설악산, 경복궁 원형복원,서울의 옛모습 등을 꼽을 수 있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작품들 가운데 애착이 더가거나 덜가는 작품이 없다는 얘기지요. 최고의 작품을 만든다는목표로 항상 디자인과 자료수집에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작품들 가운데 롯데월드 민속촌 모형은 제작인원만 110명이 투입돼 2년동안 만든대작이었다.

홍대입구에 위치한 주식회사 기형성 건물의 1층 관람실에는 현재 기교소의 주요 작품들이 모두 원형으로 보존돼 있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전시관을 설립해 일반인에게 작품을 공개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기 교수가 처음으로 모형제작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2년 군복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기 때문에군대 작전용 모형시설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제대후 기 교수는 일본 나고야의 신꼬오 모형제작소를 방문해 일본에서 장인 대우를 받는 우에다 마사헤이씨의 사사를 받았다. 한국으로돌아와서는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의 지도 아래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1967년 한국종합기술 개발공사 건축부에 입사해 2년 뒤 별도로 모형제작팀을 창설했던 공직 경력도 갖고 있다.

기 교수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자신의 모형제작을 통해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때라고 한다.

"작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이 신설됐을 때 작품출시를 요청받았습니다. 한국의 전통 생활공간인 연경당을 제작해 보냈는데 개관행사 때 전시된 작품 가운데서 가장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의 린제이 샤프 박물관장은 기 교수에게 감사패를 전달했고 작품을 영구히 전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기 교수는 사실 작품활동에 비해 이렇다할 수상경력을 갖고 있지 않다. 국내에서는 모형작품을 출품해 입상할 수 있는 행사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 전파에 대한 공로가 인정돼 정부로부터 여러차례 표창을받을 수 있었다. 96년에는 그 동안의 작품활동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화관 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세대차이를 많이 경험합니다. 하지만 한민족의 민족정신과 산수강산의 아름다움은 세대에 관계없이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학기말고사 과제물 처리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기 교수를 보면서 문득 장인정신이 무엇인지가 피부로 느껴져 왔다.

작품활동으로 바쁜 와중에서도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실내디자인학과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기흥성 교수 약력

△38년 황해도 옹진 출생△87년 오사카 박람회 한국대표 출품△92년 민속박물관 특별초대전△93년 대전엑스포 북한물산관 전시△93년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96년 화관 문화훈장 수훈△98년 한국모형작가협회 초대회장△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 교수(현)△주식회사 기형성 대표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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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으며 ebs교육방송을 보다가 직업세계의 일인자 프로를 하길래 봤습니다.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회사전경부터 롯데월드에 전시된 민속촌 모형이 27억짜리

수주의 작품으로 110명이 동원된 최고의 프로젝트였다는 인터뷰내용..

모형하시는 분들은 함 보실만할것 같아서 토렌트까지 찾아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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